메구미는 기부 악마다 ♡

‘메구미는 기부 악마’라고 한 것은 이를 ‘악’ 물고 덩어리가 크게 펑펑 나누어 주길 반세기가 넘었기 때문이다. 기부라는 것은 나눔인데 배포가 커야한다. 할까말까 망설이면 기부는 결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부금 영수증에 신경 쓰거나 그깟 기부금 영수증에 얽매여 할까 말까 잔머리를 굴리며 계산을 한다면 나눔(기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에 해당된다.

백혈병 소아암 환아돕기 자선음악회.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필자는 상당히 긴 시간을 나눔의 정신에 바짝 신경을 썼다. 초년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고…… 그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증거고 또 인생은 기부 속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국어 단어가 많아져서 재능기부라는 말도 들어본 것 같다. 재능이란 발휘이지 기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된다. 재능 발휘가 맞는 것 같다. 기부와 발휘와의 차이점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기부는 물품을 주는 것이다. 상품이나 현찰(돈)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부금이란 말이 있다. 재능은 서비스하기 때문에 한 번 더 강조해주고 싶다. 단어를 잘 사용하도록. 재능 발휘라고!

필자는 이래봬도 애들을 일본과 한국에서 여덟 명이나 케어(돌 본) 해준 경험이 있다. 나의 운명에도 없는 아이 기르기. 그것도 남의 아이 기르기! 한 발 앞서 이야기하면 남들이 보살피지 못하여 내가 기른 것이었다. 수년이 지난 일본에서의 일이다. 처음에 남의 아이를 보살피게 된 것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상담이 있다고 하여 그 상담을 들어주니 기가 막힌 상담이었다. 혀를 찰 일이었다. 이야기인 즉 친구가 재혼을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재혼 할 상대방 측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그것에 대해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서 필자는 질문을 던졌다. 애도 애지만 너는 그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니 정말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대답해주었다. “그럼 네 아들 내가 길러줄게! 당장 데리고 와.” 내 말에 그 친구는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여 “진짜로?” 하고 되묻는 것이다. 나야말로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그런 일을 농담으로 받아드릴 수가 있냐? 하고 그 아들을 당장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게이타 군이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운명에도 없는 남의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일단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내 자식도 아니니까. 한 순간 지나가는 인생을 돌봐주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까. 화를 낸다거나 불만을 이야기 하진 않았다. 원래 필자는 봉사와 기부를 취미삼아 늘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주신 임무라고 생각했고 그 임무에 반항하지 않았다.게이타 군은 동경 이타바시의 TAEKYO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정확히 1년을 보살피니 대학에 가게 되었고 일본에서 센뻬(전통과자)로 유명한 메이커 소카센뻬와 같은 글자의 대학에 입학 시켰다. 동경 바로 다음 역 소카시에 위치한 소카 사립대학이다. 일단 재수하는 것 보다는 적당한 캠퍼스에 보낸 후 유학을 보냈다. 일본이나 한국의 특징은 단대(2년제)는 캠퍼스가 따로 있다.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은 각각 다른 공간에 위치한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유니버시티 4년제 대학 캠퍼스와 같은 주소지에 칼리지 (단대 2년제)가 속해 있는 것이다. 참고 사항이라 알려주고 싶었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캠퍼스 신세를 져서 아주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한다.그렇게 소카대학에 입학을 시킨 후에 1년을 다니게 한 후 미국 플로리다의 MIAMI 대학교로 편입시키기로 하고 미국의 유니버시티 오브 마이아미 대학교로 작전을 바꿨다. 그곳은 4년제 이다. 일본 사람들은 본래 영어를 잘 못한다. 기왕 내친 김에 미국의 국립대학교에 넣기로 하고 성급히 일본에서 국제선을 예약하고 일본 HANEDA 공항에서 출국하여 뉴욕에서 내렸다. 그 다음에 국내선으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에서 내려 아파트를 잡아주었다. 등록비는 후에 은행계좌로 넣어주면 되니 그것은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게이타 군에게 헌신하였다. 부모가 이혼하고 다시 그 엄마가 재혼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었고 그러한 이유로 내친 김에 확 쏴버린 것이다. 나는 뜨거운 성격을 가진 소유자인 것임이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부 악마라서 말려도 안 된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손과 이익은 나하고 거리가 먼 일이다.그렇게 필자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자 다시 두 명의 남자 아이에게 비슷한 사정이 추가로 발생하였고 나는 또다시 허락을 하여 피도 섞이지 않은 세 명의 남자 아이들과 두 명의 여자 아이 총 다섯 명을 보살피게 되었고, 다섯 명을 미국의 대학에 보내고 난 후 나는 생각을 했다. 잠시 나에게 작은 인생의 숙제가 수 년 간 있었던 것이라고. 필자에게도 많은 공부가 된 것이다. 그렇듯 수년을 보살펴 준 후에 필자의 이야기가 걸작이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다.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너희들 각자 부모에게 돌아가거라.’ 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할 시기가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청첩장이 왔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는 청첩장을 보내지 않고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필자의 주위에선 난리가 났었고, “배은망덕한 놈, 너희 엄마는 너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재혼했을 때 너를 대신 길러준 것은 메구미 상인데 어쩜! 말도 안 돼!” 하고 일본 사람들이 다들 화를 내었고, 또 나에게 물었다. “메구미 상. 무슨 말 좀 해봐요.” 하고. 그들은 나대신 화를 냈고, 나는 너그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 할머니였다. 나이는 젊지만 속에는 할머니가 있던 것이다. 

“나에게 청첩장을 못 내지 않나 싶어. 아마도……”

이렇게 대답을 하니 친구들이 화를 더욱 내며 필자에게 다그쳤다. 다그쳐도 나는 할 말을 잊지 않고 냉철한 판단 속에서 대답을 했다. “그 아이는 분명 아이의 부모가 있는데 나를 왜 초대 하겠어? 자기 부모를 초대하지! 나 원 참.” 그 부분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니, “어머나! 이 와중에도 그렇게 대답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혀를 찼다.

하여튼 모두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다섯 명 모두 미국 유학까지 마쳤고, 그 중에서 게이타 군이 일본에서 늘 필자 이야기를 하고, ‘메구미 상 뵙고 싶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왔었지만 나는 내 할 일이 많으니 이제 됐다, 내 숙제는 끝! 하고 거절했다.

사람이란 은혜를 준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감사의 때를 놓치면 더욱 안 된다. 찬스는 오직 한 번뿐이다!

그렇듯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내 운명은 여러 어려운 일도 숙명처럼 다가오곤 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일본 사람들 이야기다. 문득 한국에서도 토지 매입 건으로 청담동에서 일을 치루고 있을 때 일도 생각이 난다. 일본에서 한국에 왔을 때부터 눈이 녹지 않고 아스팔트가 아직 깔리지 않은 길이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만에 흰 눈 속을 헤매며 간간히 낡은 버스가 도착했고, 덜커덩 덜커덩 소달구지 같은 차를 탄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래 된, 지금의 청담동과는 거리가 먼 당시의 일이다. 지독하게 추웠었고 허허벌판에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막 개발을 하려고 폼을 잡고 있었던 때였다. 그럴 때 한국의 중앙대학교 약대에 합격했는데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 학생을 돌봐달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필자는 뭐든지 OK하는 성격이라 장본인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남자아이였는데 그는 필자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나중에 갚을게요. 꼭 갚을 겁니다.”라고 갚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때 당시에 한국의 중앙대학교 약대는 서울대 약대보다 잘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여서 승낙했다. 그의 이름을 물어보니 이룰 치에 씻을 완 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었다. 학번은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또 그 학생이 있을 곳도 없어서 내가 거주지를 제공하고 용돈에 생활비에 학비까지 눈만 뜨면 드는 모든 경비를 내가 제공해주었으면 하길 바랐다. 나중에 갚을 테니까 말로만! 말로만!

그렇게 4년이 흘렀는데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낙제하여 다시 1년을 더 다녀야 한다는 말을 했고 나는 참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후원이고 기부이고, 금전이 많이 들어간 부분에 대해 고맙거나 죄송하다는 마음은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운명에도 없는 5년이란 세월 간 숙식, 생활비, 용돈, 학비, 의복비를 요청해서 필자는 행동으로 옮겨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니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거의 똑같다. 일본 아이도 결혼식 때 필자를 초대하지 않았었고 한국 아이도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당시 들었던 ‘모든 경비는 다 갚겠다.’던 아이가 말이다. 필자의 도움 덕에 강서구에 약국을 경영하고 있고 아파트가 수 채 있는 것으로 들려온다.

이 책을 본다면 돈 갚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갚겠다고 굳게 그 아이가 약속했고 그 후 떼어 먹었으니까!

한국에 또 한 사람이 있다. 그 아이도 남자아이인데 거처도 없었고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아이라고 당시에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등록금과 기타 등등의 생활비를 지원해줘야 할 상황이었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에 합격을 했는데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도와달라는 소개였다. OO승이라고 하고 이름과 성이 가물가물 하지만 마지막 이름의 글자는 기억하고 있다.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지금은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필자가 바랐던 희망사항이었으니까!

주로 떼로 몰려드는 탓에, 또 그 당시에 한 명이 더 있다. 전OO이라는 당시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단지 거처가 시골이여서 서울에 올라와 주거가 없어 도와달라는 내용의 부탁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특별시에도 독채 한 채를 아예 후원의 집으로 설정하였고, 그곳에 갈 곳도 없는 아이들의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였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기부 악마 행위를 오래 전부터 시작했었다. 이렇듯 기부 악마의 행보는 끝이 나질 않는다. 기부에 대해서는 천성이고 필자의 인생이다. 기부 마라톤 대회를 해도 절대 질 것 같진 않다.

제기랄! 하지만 고맙습니다.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즐거우라고 했건만 상대편들은 콧방귀이다. 모두가 자기가 잘나서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절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섭섭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인생이다. 기부 악마의 굴복하지 않는 매력에 영양제를 첨가해 더욱 더 멋진 기부 악마의 스타일을 보여주겠다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악마 버릇은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서초구에 어린이 난치병 환자가 수백명이나 되어 후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귓가에 들렸었다. 수술비 후원에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고 후원해 준 것에 또 기부 악마가 된 것이다. 또 음악을 무진장 좋아하는 필자는 S대학의 현OO 교수와 제자 음악회 클랑목관 5중주단 등 다수의 음악회에 리더스 컬쳐 공식 후원을 했고, 일본 오사카 국제 콩쿠르 한국 지부 명예 회장도 역임했다. 

메구스 댄스 단원들과 함께 인천 사할린 동포들을 위문하는 필자

보통 음악회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없으면 연주가 불가능하다. 근데 이 연주회는 피아노가 없어도 연주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매력에 후원을 하였다. 

목관악기로만 연주를 하니 독특하고 현대적인 냄새가 물씬 느껴졌다. 독일 벨칸타레 메구스라고 성악 부분에도 힘을 쏟았다. 벨칸타레의 뜻은 독일어로 ‘아름답게 노래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벨칸타레 메구스를 한국에서 콩쿠르를 한 적도 있었다. 메구스 장학금 시스템을 가진 콩쿠르였다. 성악인만 참가 할 수 있는 콩쿠르인 만큼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테너 등등 장래성이 밝은 성악인 발굴에 목표를 두었다. 

또 국회본청 귀빈실에서 화재현장에 뛰어들다 순직한 소방관 가족 후원회장도 역임했다. 필자의 눈이 멈추는 불쌍한 사람들은 그냥 스쳐 보내질 않았다. 한국 사회문화 예술협회 명예회장, 동작구 생활체육연합회 명예회장을 역임하면서 기부악마의 행보는 끝이 없다.

오늘도 기부악마는 좋은 뜻을 향해 무언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반드시 기부악마인 필자가 해야 할 일이 꼭 있을 것이다! 라는 희망에 부풀어서…….

‘이제 겨우 해냈니?’가 아닌 기필코 해낼 것임을 약속하며. 잠시 생각을 하면 필자의 제 2의 고향인 순수한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아 어린 손, 작은 손들에게 무한한 기부로 사랑의 길을 펼치기도 하였던 필자!

메구스 배 댄스 스포츠 프로/ 아마 선수권 대회 스포츠 조선 전면 광고 후 공고

벨칸타레 메구스 장학회 콩쿠르

메구스배 댄스스포츠 프로/ 아마선수권대회. 최초로 AT센터 메구스에서 대여. 

메구스배 댄스스포츠 프로/ 아마선수권대회. 최초로 AT센터 메구스에서 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