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로 파리(Paris) 오트쿠튀르 주문하기

파리(Paris)의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시즌 행사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패션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뉴욕과 런던, 밀라노 컬렉션도 있지만 그래도 전통의 파리 컬렉션의 명성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딸들이 많다. 딸들은 각자 직업이 다르고 무척 바쁘다. 프랑스인의 피도 섞인 탓인지 이목구비가 서구적인 데가 있고 체격도 늘씬한 편이다. 성격들도 활달하고 낙천적이다. 무엇보다도 여성으로서 세계의 패션 흐름을 쫓아가면서도 개성적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남다른 의지를 발휘해왔다.

 

 

사실 비즈니스 우먼이 패션을 무시한다면 이건 ‘재앙’이다. 미국에서는 어제 입은 의복을 입고 출근하면 ‘쟤는 어제 바람 폈나봐.’ 라는 쑥덕거림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노골적인 핀잔을 듣는다. 미국 문화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상상이 잘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여성들은 비싼 거든 싸구려든 상관없다. 반드시 체인지 해야 한다. 이것은 직장의 룰은 아니지만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꼭 골탕 먹는 대상이 된다. 한국에서 막 건너온 유학생들이야 관계없다고 본다. 뭐, 미국 시민이 아니니까. 이런 ‘괴상한(?)’ 룰에 따를 필요가 있을까? (웃음) 하지만 미국의 여성들은 회사 내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어제 입은 걸 입고 나온 동료를 올려놓고 뒷담화를 한다. 이런 소리를 하면 한국인들은 와, 미국 사람들 옷값 많이 들겠네 하는 반응이다. 맞는 말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보통 직장인들은 브랜드 있는 옷은 엄두도 못 내고 주로 싸구려 옷을 할인마트 등에서 사서 입는 편이다. 아무리 싸구려라도 매일 갈아입으려면 옷값이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다.

 

 

일본은 세계를 따라가는 데 선수라서, ‘파리 컬렉션’이라는 월간지도 옛날부터 있었다. 여성들의 우상이 된 파리 컬렉션의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다. 솔직히 사업을 하고 커리어 우먼으로 일하는 우리 집 여자 형제들이 그런 잡지를 한가하게 들여다볼 틈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파리 컬렉션을 보러 파리로 날아가서 마음에 드는 패션을 구경한다는 건 가능성 제로. 그렇다고 패션에 대한 욕구를 포기할 수는 없고…. 어떡하나.

 

순간,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갔다. 회사 팩스를 이용하자! 팩스로 보낼 A4 용지에 슬슬 그림을 그려 내려갔다. 입고 싶은 디자인을 쓱쓱 긋다가는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수십 번. 드디어 어울릴 만한 스타일이라고 식구끼리 낙찰 통과. 우리는 바로 파리 오트쿠튀르 샵에 팩스를 보내고 주문을 넣었다. 주문 끝! 우리 집 딸들은 행동파, 밀어붙이는 데는 성격이 한결같이 똑같다.

 

 

파리 샵과 단체주문을 내세우며 가격 디스카운터 협상이 진행되고 해외 송금이 완료됐다. 딸들은 유럽 왕가의 프린세스는 아니지만 같은 오트쿠튀르 샵에서 커리어 우먼 의복을 마련한 셈이다. 다 된 옷은 긴 박스 안에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옷걸이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로 항공편으로 온다. 오트퀴투르인지라 가격은 좀 나간다. 고가의 옷을 입고 더 일을 해서 더 많이 벌면 오케이.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패션에 투자하는 것. 그건 신성한 여성만의 특권이자 정체성의 확인이다. 아름다워지려면 일이든 뭐든 부지런해야 하지 않을까.

 

 

파리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는 나와 딸 형제들의 불타는 의지가 마침내 현재의 화장품 사업으로 확실히 분출되고 있는 셈이다. 오늘 밤도 사무실에서 나 홀로 남아, 아시아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귀엽게! 가꾸어나갈 꿈과 씨름하며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