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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라면 역시 그건 나죠

 

‘길고 모던하며 우아하고 자연스럽고 섹시하고 당당한 나죠!’

한국의 숟가락은 이렇게 내게 뽐내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필자는 미국의 35개주를 돌아다니며 무역 비즈니스를 해봤고, 말레이시아, 홍콩 등 동남아시아, 유럽과 아프리카, 특히 북아프리카까지 회사 경영 관계로 다니기 때문에 늘 새로운 음식 문화를 접하게 된다. 사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2,000여 가지 세계 각국의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 서너 가지 종류의 요리사 라이선스를 갖고 있을 정도로 요리에 좀 ‘광(光)적’이랄까.

 

 

 

요리를 하다 보면 포크, 나이프, 스푼, 젓가락 등 각 나라의 식기를 습관적으로 유심히 살핀다. 세계의 식기, 조리, 주방 기구들을 다 관찰해보고 만져보았지만 그 중 한국 숟가락은 단연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난 그림도 그리고,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공예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적인 관찰력은 남다른 데가 있는 편이다. 그런 내가 한국 사람들은 흘려 보낼지도 모를 ‘숟가락’을 보고 와우! 와우!라며 비명을 내질렀다.

 

 

 

한국 숟가락은 우선 입안에 부드럽게 들락날락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중국의 짜리몽땅한 숟가락으로 뭔가를 떠먹으려면 손목을 꺾어야 한다. 뭔가 불편하고 폼이 안 난다. 그런데 한국 숟가락은 밥을 푸거나 국물을 떠먹을 때나 모션을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최소한 동작으로 우아하게 숟가락을 국 그릇에서 떠서 입으로 옮겨갈 수 있으므로 테이블 에티켓 만점이다. 

 

양식의 스푼은 머리(bowl) 부분이 너무 크고 뚱뚱해서 입을 조그맣게 벌려서 모든 스프를 떠 넣기엔 역부족이다. 서양식에서 스프는 핫(hot)핫핫! 하지 않기 때문에(어니언 스프나 어니언 그라땅 스프 외에는 그렇게 뜨겁지 않다) 스푼을 그렇게 우직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손에 들기가 무겁고 이동하는 데 부담스럽고 중국 숟가락처럼 역시 손목을 꺾어야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숟가락의 머리 부분은 입을 살포시 열어도 쑥 들어간다. 조선 시대의 양반의 기품이 이런 건가 하는 감탄이 나온다. 중국과 서양 숟가락의 손잡이도 너무 짧거나 너무 긴데 한국 숟가락은 편안한 손놀림이 가능하도록 길이도 적당하고 종류마다 어쩜 그리 같을 수 있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마치 한국의 모든 숟가락은 같은 장인이 만든 것 같다. 

또 숟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면, 서양인은 스푼을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스프를 떠서 입으로 가져 가는데, 한국인은 숟가락을 몸 바깥에서 안쪽으로 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에 넣을 수 있다.

 

멋지게 쭉쭉 팔등신처럼 뻗은 숟가락에 색깔이 고운 음식이 오른다면 그 모습은 여유만만 아찔, 짜릿하다. ‘여왕이 된 기분’이랄까. 우아할 뿐만 아니라,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졌을 한국 숟가락은 공예미의 측면에서 최신 유행을 영원히 리드하는 모던함에 전율한다. 손잡이 부분이 마치 임신 3개월 여성의 배처럼 살짝 올라온 모습은 과학적으로 다듬어졌고 싫증나지 않는 디자인이다. 그 천재적인 한국 숟가락에 그저 혀를 찰 뿐이다.

 

또 전 세계에서 금숟가락, 은숟가락은 있어도, 쥬얼리 숟가락을 만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 옛날 궁전에선 독을 넣어서 상감에게 주면 색이 변하는 은 수저를 사용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느 한국 박물관에서 본 것 같은데 ‘은수저에 칠보’라니, 은 수저를 영구히 물려주고 사용한다는 경제 감각과 칠보로 장식한 아름다움을 결합한 지혜에 참 대단하다 못해 존경스럽다. 그 엄청난 음식문화수준에 역사를 거꾸로 올라가서 자세히 알고 싶은 심정이 피어 오른다.

 

한국은 금속 숟가락인데 반해 일본은 나무 젓가락이다. 가볍고 무엇보다 내추럴이라서 좋다. 나무는 사람과 가까우니 저항하는 기분이 안 생긴다. 그 때문인지 일본인은 식생활을 부담 없이 즐긴다. 스푼은 원래 사용하지 않고, 양손으로 그릇째 들고 훌훌 마시는 게 풍습이다. 일본인이 가끔씩 사용하는 짜리몽땅한 것은 중국 스푼이다. 젓가락 길이는 한국과 일본이 대체로 비슷하다. 어느 쪽이 먼저 길이를 정했는지 필자는 잘 모르지만 사용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그야말로 좋은, 억수로 행운이라고…우리에겐 멋진 숟가락과 자연친화적인 나무 젓가락이 있으니 당당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은 내추럴 찹스틱(손가락)으로 먹고 있다.그 모습을 보고 좋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지만 다른 시선으로 볼 때는 지금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예의범절, 에티켓 없이 룰루랄라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하였던가 누군가가. 내가 너무 따지고 드는 것은 아닌지…(웃음)

 

한국 숟가락 예찬론을 늘어놓다 보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인들이 매우 매우 자주 쓰는 솔직한 표현을 듣고 놀랐던 생각이 난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표현이다. 예전부터 난 ‘의식주’보다는 역시 ‘식의주’라고 보는 게 순서에 맞다고 생각해왔다. 입는 것보다야 먹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자고로 생명 중 움직이는 동물은 일단 식품을 체내에 넣어줘야 한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듣고는 처음엔 놀래다 못해 몹시 당황하였다. 먹어야 산다는 걸 모르는 세계인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표현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사용 안 한다. 세계를 싸돌아 다닌 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영어, 일어, 불어, 아랍어로 구사해 보려니, 웃음보따리로 내 얼굴이 환해진다. 오리지널 100% 한국사람들은 이처럼 ‘솔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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