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쟈 빠리!
-감성을 자극한 빠리의 브라쟈 사건-
브라쟈를 사러 머나먼 프랑스 빠리를 갔다고 말하면 일반인들은 잘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8남매 자매들은 모두 스타일이 좋은 편이다. 나올 때는 나오고 들어가야 할 곳은 푸욱 들어가 바스트, 웨스트, 힙이 세계 표준이다. 우리 마마(엄마)의 유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프로듀스(생산)한 부모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가끔 바스트로 고통 받는 일도 있다. 화나는 일 하나를 털어놓아보련다. 미국회사 생활이 길었던 필자는 그곳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미국 여성들도 브라쟈를 사용하건만 바스트(언더)가 미디움(M)싸이즈인 경우는 많았지만 캡이 A,B,C,D,E,F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물론 더 뚱뚱보(쟘보)를 위해서도 다른 사이즈로도 있겠지만 필자의 캡사이즈는 F이다. 미국 내에서 사려면 F컵을 찾기가 힘들다. 캡이 F면 가슴 언더사이즈도 따라서 BIG 사이즈가 되어야하므로 미국의 큰 란제리 매장에서 자주 실망하며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낮 시간에 필자는 워킹우먼(일쟁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관계로 될 수 있는 한 작게 보이는 연출을 해야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남성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면 법인 일에 지장이 올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그렇게 보이려면 품질이 뛰어난 얇은 레이스로 된 제품을 찾아야 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유럽에 있었다. 그것도 프랑스 빠리에 말이다. 유럽의 이탈리아나 영국, 프랑스의 상품이 좋은 이유는 확실하다.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역사, 경제, 문화가 삼위일체가 되어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역사란 오랜 기간 동안 경제(부자, 즉 큰돈을 거머쥔 대부들), 문화(꼭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오랫동안, 그렇게 세상에 약속한 것처럼)를 세계 일류, 초일류의 물건들을 생산해 냈고 아직도 그들을 능가할 패션은 세계 어느 곳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를 따라 빠리를 자주 드나들다보니 똑같은 빽(bag)이나 구두, 란제리라도 최고의 것을 쓰고 싶다. 내가 봤을 때 감탄사가 나오는 것들을 말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빠리에서 란제리 쇼핑을 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빠리의 작은 공항은 숨이 막힌다. 지리상 작은 곳이니 공항을 늘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허나 크기보다 내용면으로 간다면 세계 TOP 수준 이다. 그러므로 공항이 작은 것은 감안하겠다. 그곳은 눈이 부시도록 세계 최고의 물건들만 판매한다. 상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명 명품(名品)을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명품이든 보통이든 일단 필요한 브라쟈를 찾아내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명품 파는 거리에 내가 필요한 브라쟈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론 명품인지 보통인지 그건 필자에게 중요하진 않다. 왜냐하면 일단 낮에 비즈니스 우먼으로 활약할 수 있는, 꽉 조이지 않고 또 너무 펑펑하지 않아야 하니까. 꽤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 수십 년은 더 지난 것 같다.
그때마다 브라자 100개 팬티 100개를 셋트로 사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 번 갔을 때 많이 사오지 않으면 그 다음 해에 방문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판단 아래 소비성이 강한 란제리는 많이 사두는 것이 득이 되므로 그러한 구매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세월이 지나 한국에 체류하게 되었고, 프랑스 브라쟈도 이제 그만 사러 가자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심 뒤에 한국 명동에 있는 유방축소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곳의 성형외과 의사는 내 말을 듣고 진찰을 했다. 그 후 의사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 병원에 오는 환자 100%가 유방확대 수술을 하기위해 오는데 유방축소를 하기 위해 온 필자가 평범해 보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의사는 필자의 유방을 슬쩍 만지면서 빙그레 웃기까지 하였다. 필자가 “어떻게 조금 줄여주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더니, “보기 좋은데 굳이 작게 하지 않은 것이 좋아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축복받은 것이지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돌아가기를 권했다. 퇴짜를 맞은 것이다!
필자는 한 번 결심한 것은 꼭 진행하는 곤조(근성)가 있는지라 며칠 후에 다른 성형외과를 다시 찾았다. 그곳 역시 주물럭주물럭 군데군데 터치를 하더니. “왜 줄이려고 하세요?” 물으며 역시 퇴짜를 맞혔다.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것이다! 의사가 NO라고 말하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브라자 사건은 여전히 계속되며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있다. 나의 가슴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8년 전부터 복싱으로 단련된 가슴은 오히려 더욱 팽팽해져 있다. 가슴을 볼 때마다 지난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폭포처럼 익사이팅한 나의 인생의 일부분, 그것에 짜릿함을 느낀다. 괜한 고민을 했던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된다. 생각이 좀 할망구가 된 듯 싶다. 그러나 생각을 좀 더 언니스럽게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오빠들이여. 응원 좀 해주삼. ‘어찌하면 좋을꼬!’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