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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 하느님의 딸이되다

 

메구미의 종교는 본래 무(無)였다. 그러나 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이 나에게 다가온 것을 말이다. 기적이 기적처럼 다가왔고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았었다.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곳곳에 출장을 하면 호텔에 투숙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건축(토목)이 전공이라 건물의 관찰력과 Room(방)의 인테리어 등을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본다. 근데 참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어느 호텔이나 ★★★★★ 파이브스타 호텔에는 Bed(침대) 옆에 스탠드 등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그 등 밑에는 서랍이 달린 얇은 키의 받침대가 있다. 그것은 세계 공통이다. 아마도 잠결에 화장실이라도 가게 될 경우 어두워서 넘어질 우려로 인해 그러한 장비를 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침대 옆의 등불 바로 밑 서랍을 열어보면 바이블(성경책)이 영어로 되어있는 것이 있다. 무심코 열어본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나라 다른 호텔에 투숙할 때도 살펴보니 똑같이 영어 바이블(성경책)이 있었다. 무심코 ‘아아- 아아- 그렇구나, 영어 성경책(책 한 권)이 있구나!’ 

나가사키 대성당 입구

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든 것이 있다. ‘왜?’ 어느 나라든 영어 성경책을 서랍 속에 넣어놓았을까 하는 것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또 누가 보기에 있는지 말이다. 무심코 넘긴지 수십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깨달음이 생겼다. ‘아차!’ 바로 그거구나. ‘만일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세계 각국의 일류호텔 bed(침대) 옆 영어 성경책은 놓여있지 않을 것이다.’ 라는 깨달음이 생긴 것 이다.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일류호텔은 삼류호텔과는 달라서 고액의 room(방) 차지(값)를 내고 투숙하는데, 사실이 아닌 것을 놓는다면 부자 투숙객들, 비즈니스맨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있지도 않은 하느님, 그의 바이블을 왜 놓아서 밤새 잠을 못 잤다!’ 하고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방값을 지불했으니 누려야할 권한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어느 누구도 성경책(바이블)에 대해서 국제민원을 호텔에 제시하지 않은 것을 보고 메구미는 뒤늦게 “아뿔싸!” 홀로 깊이 깨달았다.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느님이 계심을 직접 확인과 재확인을 한 것이다. 천천히 수십 년 동안이나! 그렇다면 결론은 하느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로 성당에 혼자서 슬렁슬렁 방문하였다. 당당히 기어들어 갔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성당이다. 속으로 되게 웃었다. 영화에서 보는 시스타상도 신뿌상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말이다. 내가 드디어 올 곳에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성당 안은 내 집과 같은 분위기로 포근하다는 점, 그리고 온화하다는 점.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예비신자로서 교육을 모두 받았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2015년 3월 28일 세례를 받았다. 나는 세례도 잘 모르고 예비신자도 잘 모르고, 교리공부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기쁜 이유는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하느님이 실제로 계심을 느끼고 그에게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부탁도 조금 할 겸 하느님의 딸이 되고 싶었다는 점이다. 남을 돕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기에 그것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느님과 친하고 싶다. 매우, 간절히!    여기서 잠시 추억을 엿보기로 하자. 1980년 초반에 나는 福原(후쿠하라) 유리코, 1948년생 여자, 직업은 한의사, 주로 침뜸 전문인이었다. 나와는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나의 친구 사유리 상이 결혼해서 아이를 한 명 출산한 후 허리가 아파서 일본의 유명한 침뜸 한의사라고 내가 소개한 적이 있다. 나는 사유리짱과 같이 찾아가기도 했었다. 길이가 기다란 10cm 정도의 침을 허리에 놓고 쑥(요모기)도 등쪽에 몇 군데 불을 붙여 놓는 것을 보고 치료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구나! 생각하며 사유리짱 옆에서 조잘거리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에 바람쐬러 가자는 후쿠하라 선생(先生,센세이)의 권유에 어느 일요일 해 맑은 날에 내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 FORD(U.S.A) 밴으로, 후쿠하라 선생(先生)과 그의 남동생, 남동생의 와이프, 또 남자 아이 한명 그리고 나와 운전수를 대동해 나가사키 대성당에 마실을 간 것이다. 장엄하고 근엄한 분위기에 약간 위축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무역이 처음이 시작된 지역이고 푸치니의 나비 부인의 스토리로도 유명한 나가사키이다. 오페라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나비부인. 필자도 한국의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를 본 적이 있다. 오페라를 참 좋아하는 지역이 일본의 나가사키이다.

나가사키 대성당 안

유명한 유행가 노래 중에 <나가시끼와 교오모 아메닷다. (長崎は今日も雨だった)>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가 왔다. 라는 노래가 있다. 그렇듯 비가 자주 오기도 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나가시키는 옛 모습 그대로의 언덕이 많다. 그러한 이유로 언덕 공사를 단단하게 해야 하므로 돌을 넓게 깔아서 다다미처럼 설치하였다하여 いしだたみ (이시다다미) 라고 부르고 그러한 곳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비가 오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돌이 빗물에 흘러내려 투명하게 비치는 모습이 일본 전국 중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무드 100%로다. 운치 100%로다!

어찌됐건 그런 곳에 대성당이 있다기에 발이 빨라졌다. 그곳의 아름다운 정원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카메라에 찰칵! 뜻도 모르는 여러 가지 동상들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당시에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나와 후쿠하라 상은 신기한 듯 조잘거렸었다. 안내원이 종교인이었다면 정확한 설명이 나왔을 텐데 한의사에 무교. 나 역시 건설업에 무교. 수박 겉핥기, 바로 그 말이 제격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 동양시멘트에 근무하다가 S 시멘트에 근무 중인 김 상이라고 있었었다. 우리 그룹 중 건설업은 일본에 있었으므로 시멘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한국의 시멘트에 대한 가르침도, 일본에서 자료도 제공해주곤 했었다. 그러던 중 김 상(金氏) -직책은 있었지만, 그냥 김 상이라고 불렀었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다들 서울특별시에 방문했었다. 명동의 R호텔에 투숙하고 바로 앞에 커다란 명동성당이 보여서 갈 곳도 없고 하여 우리가족은 성당의 설계를 관찰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가보기로 하였다.안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은 머리에 흰 레이스가 달린 면사포도 아니고 두건도 아닌 것을 쓰고 있었다. 우리가족은 거의 앞줄에 앉았었다.

 

신부님이 장시간 말한 후에 사람들이 카스테라 같은 것을 들고 지나갔다. 근데 우리에겐 주지 않고 머리에 하얀 천을 쓴 사람만 주었다. 누군 주고 누군 안주나 생각하여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 성당은 쩨쩨하다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납작한 과자 같은 것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렇듯 어언 30년,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시간이 흘렀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는 나의 인생이 선풍기의 바람처럼, 슬쩍 하느님과 함께 지나가고 있다. 지금 이순간도 말이다. 헝가리의 왕녀 출신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을 받은 것이다.

봉사는 일상생활이라는 철학 속에 남만 도우면 되는 것이다. 라는 메구미의 뜻에 따라 앞으로도 살 것이다.

기쁘다!! 기쁜 이유로 나는 눈물을 이빠이 쏟아냈다. 눈이 토끼눈 같이 충혈 되어 있었다. 세례를 받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대모님을 정하는 일도 트러블이 몇 번 있었고 성당에서 추천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었다. 나보다 더욱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모님으로 해야 한다고 하기에 필자의 주장을 펼쳤었다. 어느 정도 필자보다 젊고 똑똑하고 눈치 빠르고 재치가 있고, 카카오톡도 하고 인터넷으로 알림창을 전해주는 대모님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대모님은 내가 선택한 영특한 영레이디 마리아 상이다.

그리고 미녀인 점도 한 몫 했다. 한국에서 메구스 팬클럽 회장을 하는 하쨩(일본에서 학교 동기)도 멋들어진 카드를 보내와서 나의 심금을 울렸다. 하쨩 옆에 하투(아기 강아지)도 한 몫 했다.

내가 작은 소망으로 하느님 계신 성당을 혼자 걸어서 들어갔으며 세례를 받을 때까지 많은 사랑을 쏟아 부어주신 원장 미녀 수녀님과 그밖에 모세도 많은 하나님의 지식과 말씀을 가르쳐주었다. 또 예쁜 두 분의 시스타상(수녀님들)도 눈앞을 스쳐간다. 세례를 받기 전 추운 겨울 깜깜한 새벽미사를 가고 싶어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혼자 하느님과 독대를 하기위해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졸린 와중에도 하느님의 곁으로 다가가고 싶었었다. 찬미예수라고 할 때 솔직히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하나하나 공부를 해야 할 듯하다. 막 태어나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하는 갓난아기 엘리사벳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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