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대통령의 사랑

우리 집안은 토목건설업을 대대로 해오는 관계로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좋은 땅을 보러 다니고 수익성이 보이면 서슴없이 투자를 한다. 미국을 간단히 ‘스테이츠’라고 부르는데, 젊을 때 그야말로 미국 전국의 ‘스테이츠(주)’를 구석구석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미국의 정중앙(미드웨스트)이라고 하는 캔자스시티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건설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캔자스 시티는 미국 중서부, 미주리에 속하며, 세인트루이스에 이어 인구 46여만명의 제2도시다. 미주리강과 캔자스강을 경계로 바로 건너편에 캔자스주 캔자스시티가 있다. 내가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곳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이다. 한국이나 일본에는 메이저 리그 야구팀인 탠자스시티 로열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캔자스시티를 잘 알고 있다. 뉴올린즈가 재즈의 발상지라고 하면 캔자스시티는 재즈의 요람지 중 한곳으로 ‘캔자스시티 재즈’와 ‘캔자스시티 블루스’로 유명하다.

 

그런데 캔자스시티는 미국인들이 위대한 대통령 중의 한 명으로 꼽는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성장하고 은퇴 후 숨질 때까지 노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필자의 회사는 우연히 트루먼 대통령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다. 정치와 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트루먼 대통령의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를 처음 듣곤 아~! 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무척 조용한 캔자스시티이니 그런 매력 있는 분이 나온 듯하다.

 

캔자스시티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는 캔자스시티에 살려고 하면 꼭 봐야 할 곳이 있다며 수차례 권유를 했던 곳이 트루먼 대통령이 살던 집이었다. 그가 살았던 집은 2층 집에 앞뜰이 있고 뒤쪽 별채에는 그 옛날 타던, 카키색(차분한 국방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한국인이 보기엔 꽤 넓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인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서민 주택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서민 주택 중에서도 최하층이다. 미국에서 건설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트루먼 대통령의 집이 얼마나 검소한지를 잘 안다. 이런 집에서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생활을 빼고는 거의 평생을 살았던 곳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 집에서 88세까지 살았고 부인은 그보다 10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너무나 소박한 집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트루먼 대통령이 일을 마치고 막 귀가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이곳은 2차선 도로가 나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온정 넘치는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결코 부자 동네가 아닌 그곳에 위대한 대통령이 은퇴 후에도 오랫동안 평범한 시민들과 어울려 산 모습이 그대로 한 컷의 흑백 사진처럼 다가온다.

트루먼 대통령이 살던 주택가의 조용한 거리엔 그의 사랑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온다. 대통령은 그의 집과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편에 살고 있던 처녀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내성적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본 어릴 적 장로교회 일요학교 시절부터 연정을 품고 있었는지, 아니면 성인이 되어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반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언젠가 한 번 불러서 데이트를 신청해야 할 텐데 큰 결심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길을 건너 그녀의 방에 다가가니 불이 켜져 있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창문까지 다가갔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필자는 ‘큰일을 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한 여성 앞에선 수줍음이 가득한 남성이구나.’,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야지 하고 방 근처까지 왔다갔다 한 것이 2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랑 병을 앓은 지도 꼬박 2년, 드디어 첫 데이트에 성공하고 디너를 하면서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의 탑을 쌓아 가게 된다. 역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더니, 24개월의 마음 졸임 끝에 마침내 골인! 여기서 축하! 축하!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 처녀가 바로 퍼스트레이디인 베스 월러스이다. 성격은 정반대라고 한다. 대통령 부처의 집으로 보존된 집안으로 들어서면 정말 이곳이 대통령의 집인가 의심할 정도로 작은 룸이다. 겨우 두세 사람이 앉아서 식사할 정도의 작은 테이블엔 스프 그릇과 포크, 스푼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깔끔했던 두 분의 성격이 녹아있는 듯 했다. 연두색과 오렌지색 꽃무늬 벽지도 싸구려임을 알 수 있었다. 한쪽 벽엔 퍼스트레이디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2층은 트루먼 대통령 부부의 유일한 자녀인 딸이 소유하고 있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는 않았다.

 

트루먼 대통령의 집에서 나와 도보로 5-10분 걸어가면 교차로 앞에 두 분의 돈독한 사랑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있다. 대통령의 의복과 한국 전쟁 자료들, 영부인의 앞치마가 인상적이었다. 가사 일을 하던 중, ‘하니(Honey)! 손 씻고 금방 갈게’, ‘시대는 흘러도 우린 늘 같이 있는 거야.’ 하는 듯한 소박한 모습들이 필자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