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의료원을 지을 때

드물다면 드문 편이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함께 4개 회사가 공동으로 짓는 (JV, 조인트벤쳐) 식이다. 국립의료원 같이 정부서 하는 건축은 대게 큰손인 몇몇 회사가 붙는다. 서로의 강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한두 개의 회사가 짓는 것보다 크게 짓는 것보다 안전하고 튼튼하다. 후에 건물이 낡아 철거하면 그 잔해들이 하나의 산을 형성하듯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높이 쌓여지고 수북하다.

나는 항상 작업복에 헬멧을 뒤집어쓴다. 작업복이라야 남자직원들이 입는 M 사이즈면 된다. 여자 작업복은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즈를 택할 방법밖엔 없다. 물론 나는 항상 BOSS인 입장이기 때문에 따로 그 사이즈를 맞출 순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다. 성격에 내 부하들과 같이 울고 웃고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현장에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필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같이 노력하고 고생하리라 하는 것이 나의 취지이고 또한 인생관이기도 했다. 목숨을 너무 사리면 아무 일도 성사될 수가 없다. 현장은 그렇게 언제나 위험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만에 하나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협동심은 피할 수 없는 사명감인 것이다. 말로만 일을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게 있게 해낼 때, 뜨거운 무엇인가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건설이란 매력 있는 직업이다. 사람을 구제할 수 있고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주며 배려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환자가 포근하게 입원할 수 있는 국립의료원을 짓게 되어 감개무량한 마음이 들었다. 1급 건축사와 1급 토목사가 일본에 속한 건설 회사가 랭크가 되어있다. 우리 회사는 A랭크(등급)였다. A랭크를 받으려면 10년 동안 무사고에 실적이 정확해야 한다. 최고 랭크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유는 관공서를 지을 때 기나긴 세월 쌓아온 경력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효과로 거듭나게 되고 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 병원을 지을 때 정형외과의 하기와라 히로시 선생의 이야기가 필자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젊고 머리도 검은색이었는데 요즘엔 백발로 바뀌고 곧 은퇴를 하실 모양이다. 필자의 주치의이기도 하고 많이 말다툼도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의사와 환자 사이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날 오른쪽 발목에 골절상을 입게 되었는데 수술을 한 팀의 과장이 이분이다. 수술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정형외과 하기와라 선생님이 세 시간 반 동안 수술을 했다. 항상 건강하게 움직이다 보니 이곳저곳 상처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상처가 나고 아물면 후유증이 거의 없다. 몸이 건강한 상태로 태어나게 한 점이 새삼 고맙다. 

 

하기와라 정형외과 의사는 지금은 국립의료원의 부원장으로 계시고 수 십 년간 만나지 않다가 3년 전부터 일 때문에 만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의사와 환자 사이, 한발 더 나아가서는 병원을 신축한 회사와 병원의사라는 점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국립의료원 부원장으로 계시지만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

하기와라 의사선생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의 깊은 흔적들도 그 병원에서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시골 분이시라 말이 퉁명스럽고, 목소리가 크다. 어느 날, 진료실 안의 응접실에 들어갔다. 건설회사의 대표직으로 병원 공사 중에 찾아뵌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막 수술을 마친 듯 헐레벌떡 진료실로 들어와 몇몇 의사와 이야기를 했다. 하기와라 의사는 재미있고 소박한 분이라고 늘 기억된다. 캐비닛을 열고 무언가 꺼내려고 하는 시늉을 할 때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유는 큰 병의 청주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꽤 말을 거침없이 던지는 스타일이라 술병에 대해 물어보았다.

“센세이 (선생님). 그거 술 아니에요?”

“맞아요. 술(청주)에요.” 라고 대답했다. ‘웬’ 병원 안에 큰 사이즈의 술병이 있냐고 물으니 선생님의 대답이 인상에 깊다.

“수술이 끝나면 가끔 한 잔 먹고 싶어요. 핏속의 비린내가 심해 참지 못할 때가 더러 있어서 수술 후 한 잔 먹으면 좀 나아요.”

공사전용 랜드로바의 앞부분을 와이어로

12월 5일 낮 12시. 현장 총감독 중.

나는 그때 수술하는 의사들의 고생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가 그 병원에 신축하는 일로 잠시 있었던 필자이기에 그 감각이 조금은 전달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인생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길이길이 남을 나의 국립의료원을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