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가오를 보낸 아픔을 딛고

가족처럼 키우고 있는 진돗개 가족의 어린 새끼를 잃고 마음 아파했던 메구미. 한국에서 비즈니스 하는 동안 유일한 반려자로 애정을 쏟고 있는 필자의 어미 진돗개 MS. 대전의 서글픈 사연에 한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듬켜 안고...

설마했던 순간이었다. 아사가오(나팔꽃. Morning Glory)는 차디찬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때가 3월 28일 새벽 1시 50분이고 조금이라도 발견이 빨랐으면 하는 생각과 심장 멎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엾은 아기...하면서 그래도 나에게는 아사가오의 흔적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인주(도장 찍을 때)를 꺼내어 네발로 왼쪽 앞뒤 오른쪽 앞뒤로 발자국을 하얀 종이 위에 찍었다. 다시 운명을 확인하였다. 사진으로 기억을 남기려고 하지만 슬픈 추억, 아픈 추억, 깊은 상처였다.

사후처리를 위해 화장터에 보내려니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사가오는 다른 형제들이 젖을 잘 빨고 있는데 혼자 떨어져 있었다. 3월이라 날씨가 싸늘해서 실내를 따뜻하게 할 난로를 틀어 주었고 자주 보살폈으나 몇 시간 후에 보니 엄마 이름(미쓰 대전) 등 뒤에 홀로 있지 않는가. 작은 몸체를 살짝 들어 엄마(미쓰 대전) 젖으로 향하게 했으나 거동이 하지 않고 이미 반쯤 차가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불가능으로 보였다. 엄마가 아사가오를 낳은 장소는 낮은 소파 위였다. 그런데 낳기 시작한 후 네 시간에 걸쳐 네 마리를 낳았지만 엄마 미쓰 대전이 젖을 주기 위하여 새끼에게 낮은 소파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다 아사가오가 떨어진 것이다. 즉시 안아서 엄마 젖을 물렸으나 그 때의 충격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납득이 안가는 일이다. 분하고 분한 일이다. 

아사가오의 엄마, 아빠 얘기를 하려고 한다. 엄마 미쓰 대전, 아빠 메구 투(megu two)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 할까. 메구 투는 을지로 4가에서 처음 데려왔는데 강원도 출신이다. 강아지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파파는 “일본에 들어올 때 꼭 데리고 오너라”고 하여 늘 비행기를 타고 같이 동행을 하였다

아사가오의 탄생. 어미 (미스 대전)이 양수를 터트리려 애정을 표시하려는 첫 순간.

그러던 중 파파는 메구 투를 장가를 보내라 하셨다. “왜요?”하고 물어보니, 강아지는 혼자 지내기보다 둘이 있는 게 좋단다. 서울로 데려가면 색시를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한국에 와서 스탭들에게 좋은 색시감을 찾아주어라 했더니 퇴계로에 강아지가 집중해 있는 타운에서 며칠 간 색시감을 찾으러 다녔다. 

어미 (미스 대전)의 젖을 물고 있는 새끼 강아지들과 다섯 명 낳다 파김치가 된 엄마 (미스 대전)

그러나 마땅한 색시감이 없어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대전에 한 달 반 쯤 된 강아지가 있어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니 바로 보내왔다. 사진을 보고 그날 자동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목적지도 재미있다. 대전 흑룡초등학교 바로 앞집이었다. 3층집이었던 기억이 난다. 2층으로 안내를 받아 올라가니 베란다 보다는 넓은 곳이 있었다. 이미 몇 마리 새끼 강아지들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 주인이 바깥계단 3층에서 귀여운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나의 바지를 꽉 물고는 이러저리 당겨보면서 한참을 놓을 줄 몰랐다. 그 때의 감정은 “나 꼭 데리고 가서 같이 살아요.” 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에서 대전을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때가 여름이라 무척 덥고 목이 말랐다. 메구투 색시를 찾으러 간다는 설레임으로 한 번도 쉬지 않고 스피드를 내서 달려왔으니까. 주인한테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니 “제가 물을 갖다 드리죠.” 했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가더니 쟁반에다 크리스탈 컵에 찬 물을 담아왔다. “고맙습니다.”하고 물을 마시는 순간 나는 어마어마한 곳에 왔구나, 이게 꿈인가 생신가 했다. 내가 예쁜 강아지를 보러 왔지만 고급 크리스탈 컵에 물을 담아 온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강아지를 보고도 그냥 돌아갈 수도 있지만 손님을 대하는 그 분의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를 꼭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에 “금액으로 얼마 정도 드려야 되는지요?” 라고 물었더니 “사료비 정도만 주세요.” 하면서 18만 원 정도라고 했다. “깎아주세요” 하니까 “그러면 13만원만주세요.” 하였다.

지갑을 보니 그날따라 10만원 밖에 없어 지갑을 열어서 보여주었더니 “그러면 10만원만 주세요.” 해서 돈을 주면서 한 가지 물어보았다. 어떻게 강아지가 이렇게 예쁘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이 강아지가 임신 중에 집사람이 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딸이 인터넷에 올려서 강아지를 보셨군요. 라고 말했다. 괜한 것을 물어 봤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아, 그러셨군요.” 라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강아지를 데리고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예쁜 강아지는 서울 올라가는 내내 달리는 차의 기어 박스 D(드라이브) 라인에 앉아있었다. 그곳에 앉아 졸다가 쿨쿨 자다가를 되풀이 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 도착했다. 나는 밤새 잠이 안 왔다. 왜냐면 사료값만 달라는 18만원이 수중에 없어서 다 못주고 이렇게 예쁜 강아지만 데려온 것이 송구스러웠다. 한숨도 못잔 나머지 아침이 밝아왔다. 나는 어제 함께 갔던 사람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제 대전에 흑룡초등학교 앞집 아저씨한테 연락해서 맨 처음 얘기했던 금액 18만원에서 10만원만 주었으니 8만원을 더 해결해야 하니까 여기에다 2만원을 더 보태 10만원을 부쳐 드리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 꼬맹이 강아지(지금의 미쓰 대전) 아버지 사진을 보내 주세요라 했더니 “진짜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분이네요.” 하더니 진짜 꼬맹이(지금의 미쓰 대전)의 친부(친아버지) 아빠 사진을 보내왔다. 역시 늠름했다.

그 주인아저씨가 자꾸 생각이 난다. 꼬맹이를 데려갈 때 주인이 “3층에서 엄마가 고개를 내밀고 ‘우리 얘기 데리고 가고 있네.’ 말하는 것처럼 보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때 쳐다보는 꼬맹이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 누구보다도 잘 키울게요.” 그 때 다짐했던 대로 난 자식 이상으로 보살피고 있다. 예를 들어 끼니때마다 소고기 빨간 부분(안심과 호주산 와규 달링 다운), 국내산 돼지고기 안심, 닭고기 가슴살, 매일 계란 2개, 그리고 간식)이다. 나하고 똑 같이 먹는다. 밥그릇도 똑같다. 누구 밥그릇인지 구별이 되질 않는다.

서울로 데려온 꼬맹이의 이름을 지어야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파파한테 물어보니 “미쓰 대전이 좋겠다.” 하길래 “그냥 대전은 안돼요?” 하니 여자 강아지니까 꼭 미쓰를 붙여야 된다 하시길래 일본말로 대전(오오따) 아니면 다이댕으로 할까요? 물었다. 파파는 “한국말이 좋다.” 하시며 한국의 남자가수가 부른 노래 대전블루스가 일본에서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미쓰 대전(Miss Daejun)으로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넉 달 반이 지나 생후 6개월이 되자 첫 생리가 시작됐다. 강아지는 태어나 6개월째 첫 생리가 시작된다. 평균적으로 첫 생리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임신을 하면 안 된다. 사람으로 치면 미성년자가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꼭 두 번째 생리 때부터 임신을 시킨다. 어미의 건강을 위해서다. 강아지의 배란기란 생리 시작 후 13일째부터 일주일 동안이 절정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첫 생리 시작 후 13일째부터 메구 투와 가내(家內) 별거(격리)를 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벌어졌다. 13일째부터 1주일인데 만일을 대비해서 1주일을 더 격리시킨 후에 안심하고 같이 놀게 했다. 그 때 미쓰 대전이 꼬리를 S라인으로 섹시하게 흔들더니 메구 투(신랑) 한테 “나 안아줘, 나 안아줘. 빨랑 빨랑 어서 어서”하며 섹시함을 힘껏 뽐냈다. 하다못해 메구 투가 “내 사랑이 필요해, 여보?” 하더니 사랑의 속삭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메구 투는 미쓰 대전을 꼭 안아 주었다. “나도 이제 아빠가 되는거야?” 하며 싱글벙글 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 부러울 정도로. 

아사가오가 있는 정원과 야자수 나무. 

아사가오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아사가오는 저 세상에 갔지만 엄마, 아빠 메구 투와 미쓰 대전의 곁에 남아있다. 나는 매일 메구 투와 미쓰 대전이 용변을 볼 때 마다 이들의 전용 정원으로 데려다 주는데 그곳에다 아사가오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아사가오의 엄마, 아빠 메구 투와 미쓰 대전이 늘 용변을 보러 찾아오는 정원이니까 그럴 때마다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큰 야자수 나무가 마침 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화분을 쓰기로 했다. 직경 50㎝, 높이 45㎝ 정도의 큰 화분이다.

맨 밑에 흙과 모래를 넣고 그 위에 얇은 베이지색 천에 곱게 싼 아사가오를 잠들게 하고 다시 그 위를 깨끗한 흙으로 덮어주었다. 정원으로 들어갈 때 마다 느끼지만 내가 미안해지는 것을 아는 듯 어디서 날아왔는지 심지도 않은 꽃과 풀이 화분 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화분 둘레에 아사가오의 이름이 들어간 빨간 리본을 예쁘게 매어주었다. 메구 투와 미쓰 대전의 아들 아사가오의 온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곳 정원을 지나칠 때 마다 아직 아사가오의 따뜻한 체취가 느껴진다. 직접 손으로 화분을 어루만질 때마다 따뜻한 기운이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들곤 한다. 귀여운 아사가오의 흔적들이 말이다. 3월의 슬픔을 딛고...